[숲] 지나고 보니 완전한 삼간이었네?
- 정나야의 6번째 이야기
이하영 원장의 바이브에서 삼간이 언급된다. 시간, 환경, 사람을 통칭하여 삼간이라 하고 이 삼간이 잘 맞아진 상태가 최적의 상태라고 설명한다.
그중에 시간이라는 부분이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것이 아닌가 잠시 생각했었다.
일전에 친구와 지금의 남편을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다 필요 없다. 그냥 타이밍이다. 딱 그 타이밍에 만난 사람과 이어지는 거 같다. 제 때가 아니면 아무리 괜찮은 사람을 만나도 인연이 안되더라"
10여 년 이상이 흐른 지금도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 그녀는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성격도 꽤나 사교적이라 꽤 '괜찮은' 남자를 많이 만났었나 보다. 나 또한 지금의 남편을 40이라는 나이가 아닌 다른 때 만났다면 지금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 전의 썸남 들과도 인연이 이어지지 못한 건 때가 맞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40이라는 숫자의 나이는 결혼을 해야 할 내가 정한 마지 노선이었다. 40을 넘기면 일단 아이를 갖는 것에 미련을 버려야 할 때라고 여겼다. 첫 20년 부모와, 그다음 20년은 나와 사회, 또 이어진 20년은 나만의 가정 그 뒤 또 20년은 나와 조우해야 할 시간으로 나름 정리를 한 상태라 그 마지 노선을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보는 사주도 시간, 때를 가지고 그 사람의 대략적 운명을 점친다. 사주는 우주 운행에서 태어난 순간의 우주의 상태를 보고 그 기운을 타고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사주의 시간은 단지 책의 페이지처럼 숫자의 의미만 있고 그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는 그 시점의 우주의 상태로 설명한다.
그러면 시간은 독립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공간과 함께 해야 한다. 아무리 제 때라고 해도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없다면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첫 선 자리를 서울 숲으로 정했고 나무와 풀이 많은 곳에서 걸으면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원이라는 장소에서 평소 즐겨하는 것을 함께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고 편한 시간을 가졌다. 그 전의 선 자리에서는 항상 카페를 가던 패턴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공원이라는 공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남편이 아닌 다른 결과로 이어지고 다중 우주론의 언급처럼 또 다른 우주의 탄생을 불러왔을까?
남편과의 선 이후 두 번째 만남은 선유도에서 가졌다. 첫 번째 만남에서 크게 끌리지 않았으나 그래도 세 번은 만나 보야한다는 생각에 만났다. 남편은 주변에 먹을 것이 없어 보여 준비했다며 손수 싸 온 도시락을 꺼내 보였다. 그 걸 보는 순간 '뭐지? 나 결혼해야 하나?'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김밥은 시중의 사 먹는 김밥처럼 맛있지는 않았고 입맛도 없는 상태라 별로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걸 준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스러웠을 그를 떠올렸다. 전형적인 IT 종사자답게 내성적이고 다소 시니컬해 보이기도 하고 예민해 보이기까지 한 사람이 이런 걸 준비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나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정성을 보이는 그에게 감동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도시락을 싸준다는 건 엄마 다음으로 없었던 일이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연애의 성공전략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고전적인 방법인 김밥 전략에 힘없이 무너진 건 아닌지, 검색 잘하는 남편이 미리 알아보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많이 했으나 남편의 순수한 의도로 믿기로 했다.
삼간의 인간, 사람이라는 부분에서 남편은 김밥 싸주는 남자로 내게 와버렸다.
40살이라는 시간, 선유도라는 공간 (이날 여기에 셀프 웨딩 촬영하는 사람은 왜 또 그리 많았던지...), 그리고 거기에 다소곳이 도시락 든 남자. 삼간이 일체 된 상태가 거기에 있었다.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취미생활 그밖에 생각하는 거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겹치는 부분을 찾기 힘든 우리 부부. 매일의 일상이 푸더덕 거림의 연속이고 의견 조율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다른 우리는 왜 부부의 연이 되었을까 아마 1년 더 사귀었다면 같이 사는 운명은 아니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삼간으로 되돌아보니 우린 잘 이루어진 상태였다 ( 그 당시 기준으로).
지금의 남편에게 김밥 싸 던 그 남자를 찾을 수 없다. 허나 아침이나 저녁을 차려 달라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그에게 여전히 삼간의 인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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