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7] 행복은 행복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하지만 행복은 행복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운동을 갔는데 옆에 있던 분이 47세인데 갱년기가 온지 2달이 되었다고 했다.
그분의 남편이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며 운동을 등록해 주고, 가지 않을까봐 직접 데려다 주기까지 한다고 했다.
밤에 잠을 못자고, 감정기복이 심해져 아이들에게 자꾸 화를 내고, 열도 조금씩 오르내려서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해 밤에 몇번이나 얇은 이불을 덮었다가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가를 반복하느라 잠을 못잔다고도 했다. 월경이 회춘을 한 것처럼 양이 많아지기도 하고, 한달씩 건너뛰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갱년기가 49세쯤 왔는데 이제 3년쯤 되어간다. 이제 갱년기의 피크를 찍고 서서히 적응이 되어서 열 오르내림도 거의 없어지고 감정기복도 덜해서 갱년기와 내 몸이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운동을 가거나 모임이나 지인들을 만나다보면 서서히 주위에 동생들이 갱년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정작 본인은 못알아차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갱년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내 발로 운동을 가기 시작했다.
평생 몸치, 박치여서 몸으로 하는 일에 서툰 편이었다.
그 전에는 운동을 등록했다가도 한달을 넘기며 꾸준히 다닌 기억이 없다.
하지만 갱년기 이후로 몸과 마음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힘들었다.
나는 내 발로 운동을 찾아갔다. 무거운 기구를 들거나 혼자서 하는 헬스는 별로 즐겁지도 않고 힘만 드는 것 같아서, 무슨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가 유산소운동이 필요한 것 같아서 점핑을 시작했다.
갱년기가 오니 요실금도 심해졌다.
수술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잠깐의 뜀박질이나 기침만 해도 소변이 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했다. 점핑의 원장님이 트램폴린 위에서 하는 운동이라 관절에도 무리가 덜 가고, 요실금도 좋아진다고 했다. 본인도 요실금이 심했는데 좋아졌다고 했다.
갱년기가 오면 관절도 약해져 손가락 마디도 아프고, 무릎도 삐꺽대기 시작했다.
나는 대형 생리대를 하고 점핑을 했다. 숨은 죽을 것처럼 차고, 얼굴을 벌개져 여기가 어디인지 정신이 오락가락 했지만 신나는 음악 속에서 근력과 유산소, 스트레칭을 고루 해주시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다녔다.
하지만 한번 운동을 다녀오며 기본이 3일은 근육통과 피로감에 시달리며 누워있어야 했다.
매일 가는 것은 상상도 못한 채 주2~3회라도 다니려고 내 딴에 엄청나게 노력했다.
운동을 마치면 생리대는 꽉차서 미리 나와야 할 정도였지만 운동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나갔다. 처음 3개월을 등록하고 나서 재등록 할때 원장님이 당연히 재등록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8개월 정도 점핑을 다니다가 이사간 뒤에 집 가까운 근처의 요가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유난히 몸이 뻣뻣해서 나중에 파킨슨병을 앓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요가원에는 몸이 유연한 사람들이 주로 오는 곳인가 싶을 만큼 사람들은 어렵고 이상한 동작들을 잘도 따라했다.
내가 했던 요가는 하타요가였는데 요가원 원장님은 남자분이셨다.
그는 마치 인도의 요기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수행자처럼 진하게 수련하는 스타일이셨다.
나는 이번에도 나 혼자 오징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 나혼자만 외계인인가 싶을 정도로 기본적인 동작이 되지 않았다.
너무나 다행이었던 것은 요가하시는 분중에 부부가 오시는 데 남편분이 뻣뻣하고 통통하신 분이셨다. 나는 그분의 존재를 위안삼으며 감사하며 다녔다.
요가도 역시 하루가면 기본 3일은 근육통에 시달리고 입술이 터지고, 몸살을 앓으며 누워 있었다. 그렇게 또 8개월정도 요가를 다녔다.
엄청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며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미세하게 조금씩 조금씩 몸이 늘어나서 전에 안되던 동작들이 조금씩 비슷해져 가고 있었다.
당연히 제대로 되는 동작은 아직도 거의 없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어깨가 조금 아파서 요가를 쉬고 다시 점핑을 다니게 되었다.
이번에 다니는 점핑은 지난 번에 다녔던 점핑과 다르게 허브티를 마시며 좌욕도 하고 점핑도 강사가 직접하지 않고 홈트하듯이 TV를 틀어주었다.
그래서 좋은 점은 난이도가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다녔던 점핑보다는 강도가 거의 반으로 줄었지만 이번에는 다음날 몸살이 날정도로 하지 않으니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그것도 오랫만에 하니 처음에는 힘들고 근육통이 있었는데 3개월쯤 다니니 근육통도 없어지고, 하루에 운동을 2번 해도 괜찮아졌다. 처음에 운동을 할 때 나를 괴롭혔던 요실금도 운동을 해서인지 갱년기가 지나가고 있어서인지 이제는 점핑을 해도 괜찮아졌다.
돌아보면 갱년기가 나에게 고통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서서히 운동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가고, 전보다 요즘은 더 건강해지고 있다.
문득 우리는 삶에서 더 풍요롭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하고 좋은 것만 추구하며 살려고 노력하지만 행복은 의외로 그렇게 좋은 것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 속에 나 자신을 알아가기도 하고, 두려움 속에 용기를 되찾기도 하고, 관계의 고민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배우기도 하며 질병 속에서 건강한 삶을 회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는 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나 보다.
갱년기가 나에게 가져다 준 것들에는 건강과 유연함, 활력과 운동이 있다.
지인의 어머니가 나는 60대가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내 인생의 꽃이었다고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난다.
요즘 나도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활기차다.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보면 현실은 항상 나의 생각과 다르다. 내 머리 속 생각을 다 믿을 필요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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