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일'이 따로 있다고 하면 그 반대에 '가슴 뛰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그렇게 이분화하는 순간, 우리는 일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게 되지요. 가슴 뛰지 않는 일들은 그런 방식으로 평가절하됩니다.
불편한 점은 또 있습니다. '가슴 뛰는 일'은 늘 최고의 성과, 최상의 결과와 어울려 다닌다는 것이에요. 그런 일은 미진한 결과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할 수 있는 역할이나 기능에 근거해 그 대상을 규정하는**,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일을 한다면 최고의 기능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냐는 미명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는 기능론에 근거한 서양의 사고방식을 답습한 것처럼 보이기에 마뜩잖습니다. 마치 인간을 최고 결과를 뽑아내는 기계로 생각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가슴 뛰는 일'은 가슴 뛰지 않는 일을 하는 타인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의 성과를 축소시키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괴리시키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는 가슴 떨리진 않지만 자기 일을 성실히 해내는 큰 힘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소중한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거겠지요.
그런 사람들 중에 묵묵히 청소일을 하는 김예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해요. 얼마 전 9인의 작가가 쓴 <일잘잘:일 잘하고 잘 사는 삶의 기술>***이란 책으로 독서토론을 했어요. 김예지 작가도 그 책의 저자로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녀는 미대를 졸업하고 인턴으로 일하다 프리랜서로 전향했지만, 암울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 그녀에게 엄마는 결심한 듯 함께 청소일을 해보자고 권합니다.
토론을 하다 한 참여자가 물었어요.
미대를 졸업한 딸에게 청소일을 권하는 김예지 작가의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질문에 딸을 말려야 했다는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진행자는 '엄마의 행동에 공감한다'와 '공감하지 못한다'로 나누어 참여자들에게 손을 들게 했습니다. 표가 비등비등하게 갈렸어요. 저는 공감한다에 손을 들었고 이어 답했습니다.
"김예지 작가가 하는 일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피하는 일이지요. 자녀가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말렸다고 하는 사람의 얘기를 듣는다면, 우리는 그 부모에게 잘했다고 할 거예요. 하지만 책에서 김예지 작가는 그런 권유를 한 엄마를 존경한다고 표현해요. 자신과 최고의 듀오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을 하며 성실함과 꾸준함을 배웠다고 해요. 저는 김예지 작가가 꾸준히 그 일을 하면서, 또 자신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을 마주하며 어떤 힘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동기력과 회복탄력, 의지력 같은 일련의 힘들을 말이지요. 무슨 일을 하든, 일을 통해 그런 힘들이 길러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김예지 작가의 엄마 같은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김예지 작가가 자신의 일을 통해 정말 그런 힘을 갖게 됨으로써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체력이나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을 하고도 즐겁고 재밌다고 말한다면, 저는 그가 다른 어떤 힘을 갖게 되었구나 생각해요. 행동력이나 자기 추동력, 판단력, 공감력, 이해력, 의지력, 포기력 등등 우리가 명명할 수 있는 많은 힘들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