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무슨일을 하시나요?
싱글이었을 때 사람들도 만나고 영어 연습 겸 주말에는 영어모임에 종종 나가곤 했다. 4~5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테이블을 나누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그런 모임이다. 몇 차례 그런 곳을 가면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는데 '무슨 일을 하시나요?'로 질문을 시작하는 거다.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에서 꺼내기도 했지만 막상 상대가 대답을 하고 나서 내가 모르는 분야이면 호기심을 가지고 관련 질문을 이어 가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했다.
그날도 직업을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이 "삼성에서 일해요"라고 대답을 했다. 순간 내가 질문을 잘못한 건가 의심했다. 한 번도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어디서 일하는지'로 답으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중히 어떤 일을 하는지 다시 물었고 그제야 상대방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답을 했다.
상대방의 직업에 대한 '삼성'이라는 대답에 나는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놀랍고 반가운 리액션을 기대한 것일까 아니면 직업을 물었더라도 삼성에서 일하면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해 같은 거였을까. 나에게 직업을 묻는 건 처음 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과 첫 만남의 어색함의 물고를 트기 위한 수단인데 이런 명사의 답변은 동사의 답변을 기대한 나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그 후로도 직업을 물으면 답하는 사람의 다양한 표정과 태도를 맛볼 수 있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에 일하는 사람은 본인의 하는 일보다 일하는 소속을 먼저 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몸 담은 회사가 소소하다고 생각되면 이런 질문에 움츠러들고 자세히 이야기하는 걸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라고 다시 물어야 했다.
나중에야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현재 나의 모습에 비춰 나의 입장에서 쉽게 판단한 건 아닐까.
나는 해외 업무일을 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영업보다는 그나마 스트레스가 적어 보이는 구매 쪽을 원했다. 그런
일을 원했고 그 일을 하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 내가 썩 원하지 않으나 영어와 중국어를 다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근무한 곳도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을 원해서 하거나 좋아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중간 과정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만나 직업 이야기가 나온다면 본인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거나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전업주부이다. 20여 년을 나를 위해 살았다면 또 다른 20년은 가족이라는 터울 안에서 내 몫을 하고 싶었고 그런 선택을 했다. 하지만 우는 아이를 등에 업고 집안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쑤신 등과 어깨를 어루만지며 가끔은 힘들어 눈물이 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떤 표정으로 나의 일을 설명할까. 명사보다 동사로 나의 일을 설명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가끔 형용사도 필요하다 "아~ 힘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