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인천 아라뱃길 전망대 쪽을 놀러 갔을 때인 거 같다. 남편이 둘러보며 한마디를 한다. "여기 다음에 부모님들 오시면 여기로 오면 되겠다" 이것은 남편이 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것을 봤을 때 표현하는 언어라고 생각했고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부모님이 놀러 오시는 것까지 고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남편은 좋은 곳을 보게 되면 종종 다음에 부모님 오시면 여기로 오자는 말을 자주 했다. 남편은 좋은 것을 보면 가장 먼저 부모님이 생각이 났던 거다.
22살. 처음 중국 유학을 갔고 방학에는 혼자 여행을 갔었다. 중국에서 마주한 웅장한 자연을 마주 할 때 그것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항상 그 순간 엄마가 떠올랐고 이 모습을 엄마와 함께 보고 느끼고 싶었다. 평생 고생만 하고 사신 엄마가 이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상상하곤 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엽서를 사서 엄마에게 짧게 글을 써서 보내 드리곤 했었다.
26살.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고 졸업 여행은 중국 단짝 친구와 남부지역으로 갔다. 구이린의 자연경관은 혼자 보기 아까웠고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저녁에 본 '리우 싼 지에'라는 뮤지컬은 환상적이었다. 그런 놀란만치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난 남자친구를 생각했다. '같이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후로도 여행을 많이 다녔고 그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누군가가 떠올랐다.
37~8살 무렵에 갔던 유럽 여행에서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에 함께 있던 너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그 순간을 기억하기 바빴다. 온전히 그 아름다움을 눈에 다 담아 두고 싶고 간직하고 싶었다. 모든 순간이 설레고 감사하고 기쁨으로 충만했다.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 지금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아이가 더 크면 한번 더 와보자"가 되었다.
아름다운 것을 마주할 때 내가 떠오른 사람들을 돌이켜 보니 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엄마에서 남자친구 그리고 나 자신에서 가족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남편은 지금 부모님을 생각한다. 이제는 그 마음을 알아채어 맛있는 것을 먹거나 하게 되면 내가 먼저 부모님이 오시면 먹으러 가자고 한다. 무뚝뚝한 남편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알기에 나 또한 그 마음에 동참하고 싶어 진다. 시부모님도 이런 남편을 마음을 알았으면 하기에 언젠가는 꼭 말씀드리고 싶다. 아들이 얼마나 부모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지 말이다.
내가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다면 말해주고 싶다.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 그곳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