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시작된 메갈로 인해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득세하고 이 과정에 남녀가 나뉘어 크게 논쟁이 된 적이 있다. 그 시작이 어찌 되었든 결론은 당시 페미니스트를 주장하던 자들의 패배로 보인다.
직장 생활을 하던 당시 누가 너는 페미니스트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했다. 직원수 20명에 여직원은 단 두 명인 곳에서 나는 존재감을 기어이 드러내곤 했다. (근무 초기 3년간은 내가 유일한 여자였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100명의 페미니스트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물어보면 모두 대답이 다르다. 그리고 아직 나와 같은 페미니스트를 만난 적이 없다"
고 말을 하곤 했지만 다들 그 뒤에는 관심이 없다.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성질 있고 개성 강한 임 과장은 역시 페미니스트라는 물어본 자의 확인만 있을 뿐이다.
어쩌다 모임에서 페미니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끝은 좋지 않았다. 나름 독서 모임이라 책도 제법 읽고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어도 주제가 페미니스트가 되면 여지없이 불꽃이 터졌다. 그 불꽃을 지켜보면서 다시는 페미니스트 주제를 다룬 곳은 가지 않으리 다짐하며 돌아섰다.
같은 여자끼리 모여도 다들 각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달랐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을 나눌 때는 더더욱 달랐다
2020년 미국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사망하면서 나온 그녀의 기사를 보며 나와 가장 가까운 페미니스트 논리에 반가웠다.
1972년 모리츠 대 국세청장에서 남자란 이유로 어머니의 간병인 비용을 세금공제받지 못한 모리츠를 대변하였고, 본 조항을 근거로 연방 항소법원에서 승소하였다. 1975년 보건교육복지장관 대 위센펠드 사건에서 홀어미에게는 주는 자녀 돌봄 특별수당을 홀아비라고 수령하지 못한 위센필드를 대변하였다. 그는 법령이 여자 생존자에게 주어지는 보호를 남자 생존자에게는 똑같이 주지 않음으로써 차별한다고 주장했고 연방 대법관 만장일치로 승소하였다.
그녀가 맡은 변호 중에 여성만을 하지 않았고 역으로 접근하여 남성도 여성처럼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평등을 이끌어 갔다. 여성만이 약하고 남자나 정부에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자도 언제든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과 위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생각의 전환을 이끌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다. 대표적으로 군복무도 여성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군이 아니더라도 사회복무나 봉사 등을 통해서라도 남성과 같은 기간 복역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서도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누군가 군 면제를 부당하게 받거나 제대로 복무하지 않을 때 남자들이 갖는 분노는 어마무시했다. 그렇게 큰 의미를 갖는 군복무에 여성이 빠져있다는 건 문제가 있다. 똑같이 의무를 다 했을 때 좀 더 당당히 남녀 임금 차이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육아 휴직, 출산 휴가도 남녀가 똑같은 기간을 의무화해야 한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에서 눈치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하고 기업체도 그런 이유로 여성의 취업을 기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만 잘 해결되어도 출산율은 더불어 증가할 거다.
남성의 출산 육아 휴직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휴직을 보장한다면 과연 기업 입장에서 여성 근로자를 선호하겠는가. 아무리 나라에서 금전적 지원을 하더라도 그 사이에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사람을 뽑고 교육시키는데 좋아할 업체는 없다.
여성 당직의 경우도 여성의 경우 2인 1조로 하든지 해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남녀 상관없이 직장에 주어진 의무를 감당할 수 있다. 여성이 혜택을 받는다 역차별이라는 말 대신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먼저 해보고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않은가
수유실도 아빠들이 문 앞에서 들어가야 말아야 하나 망설이게끔 설계하지 말고 아빠도 주양육자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가족실 개념으로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가 남녀평등이라는 명목하에 지나치게 분리주의로 가곤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트럭과 버스를 운전하는 여성, 메이크업과 네일을 하는 남자들도 많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교과서에 의사, 변호사, 우주인, 과학자가 여성인 그림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 아이는 젠더에 갇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나는 은근슬쩍 공주님들 장난감에 자동차와 로봇 그리고 과학동화를 뿌려 놓는다
마지막으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명언을 남긴다
“여성들에게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다. 여성의 목을 짓밟고 있는 발을 치우라고 말하는 것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