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라는 게, 고통이라는 게 꼭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일까?
드라마의 대사중에 “널 만나지 않았다면, 그때 우리가 연애만 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그 부분에서 나의 삶을 돌아봤다.
그들의 서사를 지켜본 후 여서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시간들을 선택할 것만 같았다.
너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삶, 너와 아무런 추억도 없는 그런 삶,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재미가 없달까? 의미가 없달까?
너와 함께 한 시간, 싸우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찌지고 볶고 삶아서 내려진 고운 가루같다.
도토리로 묵을 만들기 위해 빻고 찌고 짜고 내리고 그 다음에 남겨진 고운가루, 그것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슬픔이라 불러야 할까? 고통이라 불러야 할까? 원망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이라 불러야 할가? 용서라 불러야 할까? 추억이라 불러야 할까?
고운가루처럼 마음 밑바닥에 남겨진 앙금에는 그 모든 감정이 함께 정제되어 담겨있다.
이젠 그걸 미움이라 부를 수도 없고, 후회라고 부를 수도 없다. 거기에 사랑도 미안함도 고마움도 추억도 함께 하기에 그걸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삶이고 사랑이고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것 없는 밝고 즐거움만 가득한 삶, 그 길을 갈 것인지, 삶의 분노와 두려움, 처절함, 사랑과 후회, 그 길을 걸을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시 삶의 희노애락을 선택할 것 같다.
그 삶의 여러가지 맛, 통증 속에는 아픔도 있지만 쾌감도 있는 것처럼 가만히 오래오래 음미해보면 이것저것 여러가지 맛이 나는 희노애락의 삶이 더 재미있고 맛날 것 같다.
그렇다면 고통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걸까?
내 인생에 없애야 하는 나쁜 것일까?
아니면 천천히 음미해 보면 그 속에 다양한 맛이 나는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풍미가득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동안 그걸 없애보려고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왔는데 그건 끝내 없어지지 않고 나를 따라다니더니 이제서야 서로 익숙해졌는지, 차분히 앉아 서로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는가 보다.
두려워 하지 않고, 떨지 않고, 밀어내려 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니가 주는 맛을 음미해 본다. 니가 나에게 남겨준 것들을 돌아본다.
돌아보니 알겠다. 니가 없는 삶, 그건 너무 재미없는 하얀 맛, 풍미없는 가벼운 맛이 아닐까?
이젠 삶이 조금 덜 불안하고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
이렇게 한발짝만 떨어져 보니 압도되지 않는다. 신은 우리에게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더니, 그 말의 의미는 삶이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면 그건 충분히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을 알겠다. 견딜수 없는 고통은 우리의 생각으로 그것을 부풀리고 저항하고 밀어내고 집착하는 마음때문에 몇배로 키워서 겪기 때문에 압도된다는 것, 그것을 음미할 정신의 여유가 없었다는 걸 알겠다.
알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작은 기쁨이 소중한 건 그 고통들 때문이었다.
그 고통들이 없었다면 그 작은 기쁨이 주는 행복을 몰랐을 것이다.
예전에 그것들은 그저 뻔한 위로의 말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그저 그런 위로가 아닌 실제인 것 같다.
지금 있는 것,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즐긴다는 것,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