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쓰는 내 모습은 바깥날씨와 비슷하다. 해 같은 얼굴을 하다가도, 구름이 잔뜩 낀 표정을 짓고는 갑자기 콸콸 눈물을 쏟는다. 내 글쓰기는 우기를 맞았고 나는 우산 없이 빗속을 통과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난데없이 소설을 쓰고 있는 나는,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지만 눈빛에는 호기심이 어려있다. 나를 본 누군가는 당장 우산을 건네야겠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곧 가만 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일 것이다. 그 눈빛 덕분에 말이다.
내 소설 쓰기는 한 감독님이 툭 던진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플랫폼 브런치에서 그녀의 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고, 그녀 역시 내 글을 읽었던 터였다. 그러다 한 북토크에서 우리는 만났다. 말 그대로 우연히 말이다. 그곳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나와 그녀는, 2주 후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녀는 말기암 환자를 임종방으로 옮기고 환자들의 집을 방문했던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나는 그것을, 그녀가 내게 건네는 다채로운 질문들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수박주스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짬뽕집으로 옮겨 밥을 먹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이었다.
그녀는 1년 전 아이가 여러 차례 수술을 받는 동안, 그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을 썼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책을 읽었다. 그녀는 소설을 써나가는 과정 자체가 치유였다고 했다. 서로가 썼던 글을 읽었기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풍부하고 자연스러웠다. 나 역시 지난 10년간 내가 읽었던 책들과 의사로서 겪은 경험들, 그것들로부터 이룬 내 관점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이어 나는 그녀에게 내 악취미를 고백했다. 종종 나는 ‘내가 현재 겪을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이 무엇일지 질문하고, 내가 그것을 어디까지 긍정할 수 있는지 묻는다고. 그래서 때로 고통스러워한다고.
“아이를 낳고 나니, ‘자녀가 나보다 먼저 이생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일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런 부모님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났습니다. 팔순 노인이 60대인 아들에게, 아가야 잘 가거라.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직 잊히지가 않아요. 그러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울까 봐 생각을 멈추기로 했습니다.”
헤어질 때쯤 그녀가 질문했다.
"앞으로 무얼 하고 싶나요?"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 입에서 나온 말에 스스로가 놀랐다. 말을 하면서 느꼈다. '소설을 쓰고 싶었구나.'
아마도 꾹꾹 눌러 봉인된 질문들이 기어코 머리를 들었나 보다. 이렇게 눌러만 놓아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내 말에 그녀는 놀라운 대답을 했다.
"선생님, 한 달이면 쓰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