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10]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이번 주 안다팀은 '사람'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때가 되면 절로 이루어진다.’이다.
요즘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나답지 않고 새로운 활동을 즐긴다.
집에서 하는 새벽명상 1시간을 시작으로,
트램폴린 위에서 춤추고 운동하는 점핑댄스,
남편을 위해 함께 다니는 온열사우나,
내가 좋아할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시니어모델워킹 수업,
강건모 작가님과 함께 하는 글쓰기 수업,
너무 재미있는 복지관에서 하는 필라테스,
일요일마다 가는 하트풀리스 명상수업,
주말마다 여러 가족들이 함께 가는 제주도 오름 도장깨기 투어,
토요일마다 발행하는 안다 에세이,
그 외에도 안다 줌모임, 월명독모 독서모임 등
화목에 취다선에서 내가 진행하는 명상수업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
그런데도 더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다음주부터는 잠깐 쉬고 있던 하타요가를 다시 시작해야 겠다.
너무 바빠서 못가고 있었는데 너무 하고 싶어서 주2~3회라도 다녀야겠다.
나는 평생 운동이나 새로운 활동에 별로 도전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운동을 등록하면 늘 2~3번 다니고 돈만 날린다.
처음에는 갱년기가 와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져서 어쩔수 없이 운동을 강제로 시작했다.
하루 가고 나면 근육통이 2~3일간 이어져서 쉬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가야하는 날이 오면 갈까말까를 수십번 생각하고 생각하다 겨우겨우 이어갔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운동센터에 몸이 와 있다.
갈까말까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하루에 오전에는 점핑하고 오후에는 필라테스나 워킹수업을 가는 날도 있다.
하루에 활동이 4~5개씩 겹치는 날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가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별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놀고 있는 느낌이다. 당연히 힘도 하나도 들지 않는다.
나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1시간씩 명상하는 것도 힘이 하나도 안들어서 너무 신기하다. 정말로 절로절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새벽명상을 하는데에 드는 에너지가 정말로 제로다. 에너지가 드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받는다. 이렇게 계속 수행을 이어가면 어떻게 될지 기대되고 설레인다.
그래서 요즘 나의 결론은 때가 되면 절로 된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 무언가에 힘이 든다면 아직 그 일은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때가 된다는 것은 익숙해져서 즐기는 단계인 것 같다.
때가 되면 어차피 될 일, 그냥 지금 해야 할 일을 조금 힘빼고 유지하면 된다. 잘하려는 마음보다 유지하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던 적도 있다.
그러다가 인간관계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인간관계를 맺을 때 그 적당한 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선을 무자비하게 넘어오는 사람들을 정리했다.
그 무례한 선 때문에 내 삶에 심각한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었다.
그때 세사람정도를 손절하며 정리했다.
그중에 한사람은 친언니였다.
나는 어릴때부터 오랫동안 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언니의 말투가 좀 거칠고 부정적인 편이었다. 언니의 거칠고 날카로운 태도는 나를 기죽게 했고, 늘 스트레스 받게 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있어 나는 화가 많이 났고, 나는 가족이라는 연결과 유일하게 의논할 수 있는 여자자매였기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어릴 적부터 쌓였던 내 상처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나는 언니에게 그동안 쌓인 감정을 쏟아냈고, 언니는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3개월간 연락을 끊고 살다가 이모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다.
언니는 울먹이며 그런 마음은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미안하다고 말했고, 나도 미안하다고 말하며 화해를 했다.
그 뒤로 언니는 말투가 바뀌었다. 훨씬 부드러워지고, 진심이 느껴지고, 따뜻해졌다.
이제 내 마음에는 언니에 대한 상처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언니와 나는 이제 서로에게 따뜻한 사이가 되었다. 전보다 훨씬 진심인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언니가 너무너무 고맙다. 고마운 것만 생각난다. 어린 동생을 챙겨준 언니에게, 형부에게 앞으로 오래오래 갚으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삐뚤어진 관계는 잘 풀면 이렇게 훨씬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나는 가족이라도, 최악에 인연이 끊기더라도, 이 삐뚤어진 관계에 균형을 잡고 싶었고, 용기를 냈고, 다행히 너무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법정스님의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는 글귀를 보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그 시기를 잘 보내고 나니 요즘엔 인간관계로 힘든 사람이 주위에 하나도 없다.
여러가지 요인도 있겠지만 우선 내 마음이 오고가는 인연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으며 의존하지 않으니 오면 오는 대로 잘 지내다가 가면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것이 시절인연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관계에서의 때가 아닐까.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해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인 일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법정스님- |